사랑하는 사람들은 굳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가끔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에둘러 완곡한 표현으로 위장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의 표현들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랑에 빠진 자신들은 정작 볼 수 없는 그 감정의 띠가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들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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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가로운 오후에 난 소파에 앉아 얼마 전에 사온 이병률님의 두 번째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펼쳤다. 이병률님의 다른 책인 '끌림'이 나를 무척이나 강하게 끌어당겼던 그 느낌이 좋아서 또 다른 여행 산문집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저 없이 책방에서 책을 들고 결제를 했다. 난 그렇다. 뮤지션이나 영화감독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그 사람에 대해 한번 좋은 느낌 또는 신뢰가 생기면 별 고민 없이 그 사람의 창작물을 사거나 보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비록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새로운 창작물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내가 받은 첫인상을 가치 없게 만들진 않는다. 그리고 그 작가를 내가 알게 된 이상, 내가 받은 좋은 느낌과 신뢰를 이어가려는 방법의 하나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그를 서포트 해주는 것이 그의 창작물을 좋아하고 소비하는 고객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작은 일이 아닐까. 사실 이병률님의 두 번째 여행 산문집에서 첫 번째의 강한 '끌림'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혼잡하고 바쁘던 내 마음을 한 번 쉬어가게 해주기엔 여전히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책을 읽기 전, 난 아마존 사이트에서 집에 설치할 이런저런 음향 장비들과 책장을 살펴보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항상 결론은 Checkout 버튼을 눌러서 '질러' 버리든지 아니면 '아니야, 급하게 살 필요는 없어' 라며 자신을 도닥거리고 일단 Wish list에 담아놓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나름 인내심이 많거나 그때마다 돈을 좀 아껴야 한다는 강박심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것저것 비교한 상품 중 살만한 상품들을 Wish list에 넣어놓고 한숨을 고른 뒤 소파에 앉아 이병률님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장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문득 지금 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편함과 익숙함에 안주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항상 떠나는 걸 꿈꾸고 있었다. 여행을 위해 돈을 쓰고 겪어보지 못한 경험과 시간 그리고 수많은 기대 하지 않은 무형의 가치들을 얻는 것에 투자하길 원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항상 무언가 안주하기 위한 도구들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물질을 투자하고 있다. 현실을 채우며 나를 그 안에 안주시키려 하고, 그 안에 머무르게 하려고 한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란 건 애초에 없다. 현실에 충실하라는 말에 동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이건 내 기준에서 맞지 않다고, 난 뭔가를 계속 모으기보다는 버리면서 나를 가볍게 하고 대신 경험과 가치를 누적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부딪히지만 동시에 갈망하는 어지러운 상태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난 지금 떠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핑계들과 현실적인 합당함이 있다. 그러나 떠나는 게 옳다는 생각을 언제나 간직하면서 실행하리라는 내 마음속의 이율배반,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가 급작스러운 혼동 속으로 날 밀어 넣어버렸다. 난 지금 무난하게 잘살고 있음에도 순간 그 무난함이 혐오스러워지고 나 자신에게 배신을 자행하는 기분이 몰아닥치는 순간 난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책을 집어 들어 펼치기까지 나얼의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지금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체되어 있음에도 도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원했던 방향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난 흘러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정체됨을 그냥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오랫동안 이렇게 안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 투자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고 자위한다. 하지만 떠나는 것을 꿈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되었든 그건 앞으로 꼭 일어나게 될 현실의 이야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게 지금 내가 현실에서 타협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결론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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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전달해 주는 신비한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각각 'Daemons"와 "Genius"라는 이름의 이 신비한 존재들이 하는 일은 창작의 고뇌와 두려움에 고통당하는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고뇌를 덜어줄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알려주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의 존재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창작물에 대한 무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면죄부와 같은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예술가 스스로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집착과 고뇌로 말미암은 정신병? 혹은 우울증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고대의 이야기이지만 Eat, Pray, Love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Elizabeth Gilbert는 현대에서도 이러한 법칙들이 적용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한 시도들은 예술가들이 이른바 자신의 창작물에 집착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유로워질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술가 또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붙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과 고난의 시간이 뒤따르며, 그에 따른 선천적 재능 역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창착하는 사람들이 매번 좋은 결과를 내어 놓을 수는 없다. 어쩌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다주는 신비한 존재에게 때로는 조금씩 의지할 수 있는 게 창작하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난 화장실에서 나를 도와주는 신비의 존재를 자주 만난다. 가끔은 아무것도 기록할 수도 없고, 중간에 나가기도 모호한 샤워하는 시간에 잠시 들렸다가 바로 떠나는 일도 있긴 하지만. 마치 Tom Waits가 운전 중 기가 막힌 멜로디를 그냥 날려 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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