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님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읽고 있다.
그 중 '진정한 외로움은 최선을 다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라는 부분을 읽다가..
'누구에게나 소주를 처음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문구에서 내가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공지영님은 첫 연재물을 어렵게 끝낸 새벽에 외로움에 대한 공포와 쓸쓸함과, 혼자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의 계기로 소주 한잔을 표현했다.

공지영님의 책 이야기는 책을 다 읽고나서 할것이고..
지금 하고싶은 얘기는 소주 이야기..

그냥 갑자기 내가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매우 불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라고 단정지을수도 있겠지만..
난 무척이나 성실한(?) 학생이었고..
그렇게 성실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소주를 마셔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취해봤다.

고등학교때부터 음악을 전공했던 el.은 예술고등학교를 다녔었고..
그날은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했던 날이다.
축제가 끝난 후 친구놈의 자취방에서 선배들과 뒷풀이 아닌 뒷풀이를 하게 되었던..
그때 그 기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선배들이 따라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잔 두잔.. 그리고 세잔 네잔..
이윽고.. 내가 마시는 소주는 더이상 술이 아닌 물이 되었을 때의 그 기분.
그 때 그 기분을 너무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화장실을 찾아가는 길도 무척이나 어려웠고,
화장실에서 작은 일을 볼 때 조준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고..
땅바닥이 나를 향해 끊임없이 올라왔던 그 기억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술에 취하면 아무것도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진다는것도 처음 알았고,
술에 취하면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의 일부분은 그닥 중요하지 않은것이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술에 취하면 자신감이 넘치게 된다는것도 처음 알았다.

다음날 술냄새를 풍기며 친구녀석과 교실에 엎드려 있었을때
알면서도 스스로의 모습에서 어떠한 교훈을 깨우칠거라 생각하며 그냥 그 하루를 간섭하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지금에서야 참 대단했다고 느껴진다.
그날 정말로 난 스스로 깨우쳤기 때문이다.

큰 의미는 없지만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나의 첫 소주 경험시절..

지금은 언제 소주가 마시고 싶을까?
아마도..
비가올때, 우울할때, 외로울때, 내가 싫을때, 안주가 생각날때, 좋은 친구를 만났을때, 잊고싶을때, 무작정 얘기하고 싶을때, 삼겹살 먹을때, 광어회를 먹을때, 아버지를 만났을때, 깊은 생각에 빠지고 싶을때, 이유없이 취하고 싶을때,
무엇보다..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할때..
너무 unbalance한것인가...

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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