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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난 소설로 이 작품을 먼저 만났었다.
소설로 만났던 향수는 그 독특함에 한없이 매료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로 만난 향수는 그닥 나쁘지는 않았지만.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장황한 나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심리상태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에서도 인간 내면의 욕망을 이끌어내는 가장 완벽한 향수에 대해서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실제 극장에서 동요하는 군중신에서 많은 사람들이 웃는 모습들을 보니 원작의 느낌 그대로 비주얼로 옮긴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조금 더 몽환적인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사실 영화 전반적으로 사실적인 묘사에 마지막을 그렇게 처리하는것도 안어울리긴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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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는 원작을 읽었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만족스럽게 영화를 봤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실망한 이들에게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개인적으로 영화 포스터 컨셉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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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온갖 냄새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
그리고 온 세상을 통틀어 자신을 인정 받고 싶었던 '냄새'없는 소년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그의 천재성과 악마성이 공유되어 자아를 찾으며,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범죄가 섬세하면서도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서두는 그르누이에 대하여 이러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향수'. 한 번 읽기 시작하면, 385페이지의 소설은 빠른속도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냄새', '향수'를 소재로 이러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건, 정말 대단하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를 듯 싶다.

소설 속의 그르누이의 이야기들을 그가 이야기하는 형태로 책의 내용들을 조금씩 인용하여 정리를 한번 해볼까 한다.
이제 비운의 청년 그르누이의 독백을 들어보자.

악마의 탄생

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이다. 1738년 7월17일 프랑스 왕국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파리의 페르거리 생선 좌판 뒤에서 처음 세상 빛을 보았다. 수도원으로 부터 나를 맡아서 키우게 된 보모는 나를 거부했다. 거부의 이유는 나에게서 아기 냄새가 나지 않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며,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라온 환경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녀의 예감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난 태어날때부터 남들과는 달랐으며, 나에게는 인간이 가지지 않은 사악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태어났다. 눈으로는 여느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할 수 있지만, 유모들은 날 냄새로 판단하고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 없는 가이아르 부인이 겨우 나를 거두어 주었다. 그녀는 영혼이 없는 여자라고 보여졌다. 하지만 그 영혼이 없는 여자의 집이였기에 악마성을 내제한 나 그르누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냄새를 쫒기 시작하다.

가이아르 부인은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양육비를 핑계삼아 나를 무두장이에게 팔아 넘겼다. 내가 냄새에 대한 탐욕이 있다는걸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 때 부터가 아닌가 싶다. 도시의 온갖 냄새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 모든 냄새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냄새에 대한 열망이 내 가슴 깊이 가득차게 되었다.

향기를 위한 첫번째 살인

1753년 9월1일 파리의 루아이얄 다리 위에서는 왕위 계승일을 기리는 불꽃놀이가 있었다. 난 이미 도시의 모든 냄새들을 기억하고 있는 상태였고, 눈을 감아도 냄새로만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었다. 이 지루한 행사를 그만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바람을 통해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새로운 향기를 맡게 되었다. 너무나도 새롭고 향기롭고 강렬한 느낌에 이 냄새를 쫒아 갔다. 이 냄새는 너무나도 신비로웠다. 레몬이나 유자의 신선함과는 달랐으며, 몰약이나 계피 나무잎, 박하향이나 자작나무, 장뇌나 솔이피리의 향기와도 달랐으며 5월에 내리는 비나 차가운 바람, 샘물... 등 어느것하고도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감귤이나 실측백나무, 사향 냄새와는 달랐으며 재스민이나 수선화, 모과나무나 붓꽃의 향기... 등과도 다른 것이었다. 또 이 향기는 붙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면서 말이다. 가볍고 연약하면서도 단단하고 지속적이었다. 얇지만 오색영롱하게 반짝이는 비단처럼.. 그렇지만 비단과는 또 다른 비스킷이 들어 있는 꿀이나 달콤한 우유 냄새와 비슷했다. 그 냄새를 따라간 그 곳에서 나의 첫번째 살인이 이루어졌다. 사실 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소녀의 향기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았으니깐. 소녀를 죽인 후 옷을 벗기고 구석구석 그녀의 향기를 마셔들었다. 소녀의 향기를 모두 빨아 들이고 내 것으로 만든 다음에야 난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 때 나의 기분은 정말 황홀감 그 자체였다.

향수 제조를 배우다.

내가 본격적으로 도제가 되리라 마음먹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건 이미 한물간 향수 제조인인 발디니로부터였다. 그는 찬란했던 그의 젊은날의 영광들을 뒤로 한 채 이제 향수 가게를 접고 그나마 있는 재산으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는것으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나는 그런 그의 가슴속에 새로운 갈망과 꿈과 야욕을 집어넣어주었다. 나의 놀라운 후각으로 처방전 없이도 그 어떤 향수들도 복사해 낼 수 있었으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냄새의 경험들로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새로운 향수들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도 만족했으며, 그의 사업은 나로 인해 더욱 번창했다. 사실 난 돈이나 명예는 필요 없었다. 그의 기술들을 배우고, 도제로서의 증명서만 생기면 나의 길을 떠날샘이었다. 그리고 결국 몇년의 시간동안 난 발디니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배우고 그를 떠났다. 그러나 막상 목적으로 삼았던 향수의 천국 그라스로 가는길은 생각보다 힘든 여정이었고, 사람을 피해 발길을 옮기던 나는 알 수 없는 깊은 산중으로 이끌려 가게 되었다.

내 존재에 대해서 발견하다.

내가 7년동안 사람의 냄새를 피해서 동굴속에서 은둔한 이유는 딱 하나이다. 모든 세속적인 냄새들이 싫었고, 사람들과 부딪히는것이 싫었기 때문이며, 나의 미완성이 절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난 그곳에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냄새가 나에겐 없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것은 내 존재에 대한 의미가 상실된 것이며, 나 스스로가 괴물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 수없이 많은 시간을 고민하던 중 문득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냄새가 없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큰 축복일 수 있다는 것. 난 세상의 추앙과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 싶어졌다. 나 그르누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7년간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향수를 만들다.

난 25명의 소녀들로부터 향기를 채취했다. 물론 나의 채집을 위해 25명의 소녀들이 목숨을 바쳐야 했지만, 나에겐 그닥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들의 향기는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탄생할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오히려 나의 채집을 위한 죽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라스 지방은 온통 나에 대한 추적으로 발칵 뒤집혀졌지만. 냄새를 위장하는 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을꺼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아니 단언컨데 그렇게 믿고 있었으며,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녀들의 향기이다. 그 향기들은 나에게 무척이나 대단하고 소중한 것들이다. 난 그것들을 토대로 이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전혀 해로운 향수를 만들어낼 것이었고, 그 향수는 너무나도 완벽한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 향수를 통해서 난 사람들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었으며, 나를 추앙하고 나 자신이 드디어 신이 될 수 있었다. 나 그루누이는 내 마음대로, 내가 만든 향수로 인해 조종당하는 인간들이 한없이 어리석고, 미련해 보였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며, 결코 나를 거스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세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 나니 뭔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마치 나의 이러한 모든 운명의 사슬들과 시간들이 예정되어있던것 처럼. 난 오늘 나의 마지막을 결정하려 한다.


el.



[2004/12/19]

1993년..
전화회선을 통해 14400BPS 모뎀으루 통신하던 시절..
고작해야 200~300MB의 하드용량으로도 충분했던 시절..
윈도우OS가 불편하기 짝이없어서 DOS부팅을 하던 그 시절..
PC통신으로 전화요금이 엄청 나와서 혼두 났던 그 시절..
그때부터 이용하던 천리안의 텔넷 서비스..
아직 서비스가 없어지지 않은것이 참 고마울 따름이다..

온라인 향수..
그건 어쩌면 지금과 같은 빠른 인터넷 시대에 새롭게 각인되는 우울증의 한 요소는 아닐런지..
그 시절 텔넷, 새롬데이터맨, 이야기를 통해 접속하는 천리안은
온라인 채팅과 동호회 활동만으로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난 요즘도 항상 '이야기'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야기'를 통해 천리안을 텔넷모드로 접속해서 95년 이후 항상 자주 갔던 동호회를 들어간다.
그때의 그 동호회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난 아직도 천리안을 접속한다.
천리안 만큼은. 익스플로러로 인터넷으로 로그인하는것이 무척이나 불편하다.
텔넷모드가 정말 편하다..

지금은 올라오는 글이 없다.
아니.. 있지만.. 2달에 한번.. 3달에 한번 꼴이다..
그나마 그런 글들이 올라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난 추억하러 그곳을 자주 들린다.
그곳엔 내가 아주 어렸을때..
내가 세상의 쓴맛을 보기전의 순수했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곳엔 내가 아주 어렸을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했던 추억속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남겨있기에..


가끔씩 10여년전에 내가 올려놨던 글들을 검색해본다.
그리고 피식 웃음도 지어본다.
그리고 그때 내 삶을 기억해본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또다른 추억놀이가 된다.


10여년 전.. 그때 그 공간과 그때의 나의 글들이 아직 남겨져있는 그곳..
그곳은 나의 온라인 고향이다..
추억할것이 너무나도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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