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웹 서칭을 하다가 "작은 농담들을 던져 놓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매번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면 절대로 지속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없는 상황이니 더 가까워지기 위해 에너지를 쏟지 말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글의 요지는 작은 농담마저 통하지 않는 관계라면 기본적으로 코드가 맞지 않으니 다른 것들도 맞춰 볼 필요조차 없을 거라는 얘기다. 뭔가 조금 극단적이기도 하지만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관계의 '코드'라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이 문장을 사실 나는 동감한다. 아울러 문자를 보내면서 두꺼운 손가락 덕분에 연신 오타를 생산해 내는 멋쩍은 상황에서도 오타들을 교정해주지 않아도 다 한 번에 이해하고 답변하는 그런 고마운 친구란, 순간 다시 타이핑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넘어 때론 일종의 감동마저 선사하기도 한다. '저걸 알아들었어?'


위의 글을 떠올리다가 문득 일본에 사는 송군이 생각났다. 말 그대로 '아' 하면 '어' 한다는 게 통했던 그 친구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코드가 잘 맞았던 가장 소중한 친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연락도 자주 하고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계속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락을 계속 할 사람들과 안 할 사람들이 나뉜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역으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있을 것이다. 서로가 어떤 카테고리에 들어가게 되었든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있을 현재의 나의 사람들을, 내 농담을 이해하고 내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잊고 살았던 모든 소중한 관계에 대해 잠깐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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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은 굳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가끔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에둘러 완곡한 표현으로 위장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의 표현들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랑에 빠진 자신들은 정작 볼 수 없는 그 감정의 띠가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들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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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가로운 오후에 난 소파에 앉아 얼마 전에 사온 이병률님의 두 번째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펼쳤다. 이병률님의 다른 책인 '끌림'이 나를 무척이나 강하게 끌어당겼던 그 느낌이 좋아서 또 다른 여행 산문집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저 없이 책방에서 책을 들고 결제를 했다. 난 그렇다. 뮤지션이나 영화감독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그 사람에 대해 한번 좋은 느낌 또는 신뢰가 생기면 별 고민 없이 그 사람의 창작물을 사거나 보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비록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새로운 창작물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내가 받은 첫인상을 가치 없게 만들진 않는다. 그리고 그 작가를 내가 알게 된 이상, 내가 받은 좋은 느낌과 신뢰를 이어가려는 방법의 하나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그를 서포트 해주는 것이 그의 창작물을 좋아하고 소비하는 고객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작은 일이 아닐까. 사실 이병률님의 두 번째 여행 산문집에서 첫 번째의 강한 '끌림'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혼잡하고 바쁘던 내 마음을 한 번 쉬어가게 해주기엔 여전히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책을 읽기 전, 난 아마존 사이트에서 집에 설치할 이런저런 음향 장비들과 책장을 살펴보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항상 결론은 Checkout 버튼을 눌러서 '질러' 버리든지 아니면 '아니야, 급하게 살 필요는 없어' 라며 자신을 도닥거리고 일단 Wish list에 담아놓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나름 인내심이 많거나 그때마다 돈을 좀 아껴야 한다는 강박심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것저것 비교한 상품 중 살만한 상품들을 Wish list에 넣어놓고 한숨을 고른 뒤 소파에 앉아 이병률님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장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문득 지금 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편함과 익숙함에 안주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항상 떠나는 걸 꿈꾸고 있었다. 여행을 위해 돈을 쓰고 겪어보지 못한 경험과 시간 그리고 수많은 기대 하지 않은 무형의 가치들을 얻는 것에 투자하길 원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항상 무언가 안주하기 위한 도구들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물질을 투자하고 있다. 현실을 채우며 나를 그 안에 안주시키려 하고, 그 안에 머무르게 하려고 한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란 건 애초에 없다. 현실에 충실하라는 말에 동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이건 내 기준에서 맞지 않다고, 난 뭔가를 계속 모으기보다는 버리면서 나를 가볍게 하고 대신 경험과 가치를 누적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부딪히지만 동시에 갈망하는 어지러운 상태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난 지금 떠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핑계들과 현실적인 합당함이 있다. 그러나 떠나는 게 옳다는 생각을 언제나 간직하면서 실행하리라는 내 마음속의 이율배반,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가 급작스러운 혼동 속으로 날 밀어 넣어버렸다. 난 지금 무난하게 잘살고 있음에도 순간 그 무난함이 혐오스러워지고 나 자신에게 배신을 자행하는 기분이 몰아닥치는 순간 난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책을 집어 들어 펼치기까지 나얼의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지금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체되어 있음에도 도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원했던 방향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난 흘러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정체됨을 그냥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오랫동안 이렇게 안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 투자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고 자위한다. 하지만 떠나는 것을 꿈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되었든 그건 앞으로 꼭 일어나게 될 현실의 이야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게 지금 내가 현실에서 타협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결론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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