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02]
#1.
4월30일. 4월의 마지막날 퇴근시간 10분전..
무척이나 고민중이었다.
남원으로 떠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비록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겠지만..
모든것으로부터. 서울로부터.. 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단 하루라도.
모든것들이 나에게 크나큰 무게로 느껴졌고,
그러기를 이틀째였다.
항상 떠드는걸 좋아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의 갑작스런 조용한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일이 힘들었나?'라는 나름대로의 걱정들을 하는 듯 싶었지만..
(사실. 이건 나중에서야 생각 난 거지만..)
절대 그런것이 아니었다.
내가 힘들었던건, 내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건..
일이나 회사나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때문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나 자신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우울함에 빠져본적이 있지 않은가..
도대체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어 더 답답하고, 더 우울할 때가 있지 않은가...
퇴근시간은 6시.
보통 6시에 칼퇴근 한적은 없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갑작스런 술약속이 생기면, 한 잔 하고..
일거리가 많으면 일을하고,
집에가기 귀찮으면, 인터넷을 하다 간다.
하지만 이날 난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이 부담스런 짐들을 어떻게든 떨쳐버리고 싶었구.
그 대안의 하나로 남원행 고속버스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같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타고 훌쩍 떠나버렸겠지만..
어이없는 사고로 폐차장에 들어가 있는 나의 애마가 그리워질 뿐이다.
10분전 고속버스 시간을 살펴보다 결정했다.
'그래.. 떠나야해. 이대로 이곳에 있기는 싫어..'
부랴부랴 내가 떠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체크하고 짐을 챙겨 서둘러 퇴근을 했다.
#2.
Gloomy Sunday..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고, 곡을 쓴 작곡자 마져 자신의 노래를 듣다 자살해버린 미스테리의 '명곡'이다.
물론 헝가리 가사로 되어있다는 원곡을 들어본적은 한번도 없다.
가끔 너무도 궁금할때가 있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도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물론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정서적 우울함이 노래를 통해 표출되었겠지만..
얼마전 '수요예술무대'에서 mc sniper의 라이브 무대를 보았다.
'gloomy sunday'라는 곡을 부르고 있었다.
많은 가수들이 리바이벌한 'gloomy sunday'와는 무척 다른 코드와 느낌이지만.
mc sniper만의 gloomy한 느낌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에게 쏙 빠져버렸고,
CD를 사서 매일 듣게 되었다.
'gloomy sunday'라는 제목 탓일까.
이상한 신비주의를 통해 나의 무심함과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대신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gloomy sunday.. 무척이나 매료되고 있다.
#3.
저녁 8시 26분 전주행 우등버스 티켓을 끊었다.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느낌..
이젠 일반 고속버스는 많이 사라지고 있는것 같다.
우등버스가 많고, 일반버스는 1시간, 2시간에 한번씩 끼어있었다.
댄디를 데리고 있어서 짐은 좀 무거운 편이었다.
그러고보니, 이번 남원 여행은 댄디와의 이별도 포함되있었군..
주말이라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듯 싶었다.
대부분 2명 또는 혼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보였다.
버스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곧 버스는 출발했다.
아직 서울이다. 어디를 그리 가는지 모두들 분주하다.
#4.
천안을 지나고 있다.
노트북이란거 이럴땐 참 편리하다.
지금 고속버스 안에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한다.
근데.. 이런..
난 버스안에서 잡지나 신문을 잘 보지 못한다.
조금만 지나면 멀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ㅜㅠ
곧 천안,논산간 민자 고속도로로 진입할꺼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창문을 활짝열고,
시원하게 달렸던 그 도로다.
그 도로를 버스를 타고 달리려니 새로운 기분이다.
퇴근하기 10분전까지 난 여행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난 나의 결정에 만족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고속버스 TV에선 '다이하드 3편'이 나오고 있고,
내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다 잠들어있다.
나름대로 묘한 분위기다.
이 기분을 즐긴다.
고속도로 옆으로는 짙게 펼쳐져있는 암흑과
빠르게 지나가는 주황색 조명들..
어렸을때부터 손가락으로 가로등이나, 나무들을 건너뛰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버릇으로 가지고 있다.
그럴때마다 항상 옛 느낌들이 공생하게 된다.
멀미가 밀려온다.
한숨 자야겠다.
#5.
어릴때 친할머니가 계시던 전라남도 장흥까지는 7시간정도가 걸렸다.
물론 지금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그때는 길이 지금처럼 잘 만들어져있지 않았기때문에..
난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달리는 고속도로 여행을 매우 좋아했다.
내가 커서 운전을 하고, 나의 차가 생겼을때도.. 시간이 날때면 자주 고속도로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곤 했다.
어릴때 차안에서 듣던 노래중 제일 기억에 남았던건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였다.
지금도 그 노래가 그립다.
#6.
저녁 11시40분이 조금 넘어 전주에 도착했다.
부모님께서 전주역에 나와계셨다.
전주에서 남원까지는 약 1시간정도 걸린다.
들어가면서 교촌치킨에서 닭을 한마리 사서
집에서 맥주와 소주를 마시며 먹었다.
이제 남원집은 어릴적 친할머니가 사셨던 시골과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아니, 100%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비슷한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아주 좋은 일이다.
식구들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아버지와 나 둘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은근히 내가 남원에 내려와서 같이 술마시는걸 즐겨하신다.
'서울에서 술친구가 왔는데 한 잔 해야지~' 라는 표현을 쓰실정도로..
물론 나도 그 표현이 참 좋았다.
집에서 아버지와 술을 마시고 있으니..
서울에서 남원행을 결정하던 그 때의 내 마음이 많이 안정되어있음을 느꼈다.
좋은 일이다.
#7.
댄디녀석은 그 새 적응하고 있는지.
집 마당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구
따스한 햇볓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냥 이렇게 눌러있고 싶은 생각이 밀려온다.
점심때쯤 우리는 집을 나섰다.
때마침 아버지도 쉬는 날이셔서 어머니와 함께 지리산을 올랐다.
1시간이 넘도록 노고단 고개를 오르며 나 스스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답'이라는건 쉽게 나오는게 아니다.
역시 난 어떠한 '답'도 찾을수는 없었다.
단지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너무나도 맑고 상쾌한 공기와
땀 다운 땀을 흘리고 있는 내 자신이 잠깐 사이에 건강해졌음을 느낄 뿐이다.
하지만 그 느낌은 참 좋았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다들 알고 있다.
성취감이라는거.. 상쾌함이라는거..
그걸 머리로만 알고있으면 불행하다.
몸으로 직접 느낄 때 행복을 체험한다..
#8.
남원을 올때마다 항상 가는곳은 지리산 온천이다.
온천에 들어가기전에 아버지와 파전과 막걸리를 한 잔 걸쳤다.
산행으로 약간은 지쳐있던 몸이 한순간에 풀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
온천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고 한없이 나른해지는 느낌을 즐겼다.
산 중턱에 만들어져있는 야외 온천을 즐겨봤는가.
따듯한 욕탕과 숲의 나무들과 바람이 조화롭지 못할듯 싶지만..
산과 하늘과 바람에게 노출되어있는 공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벌거벗은채 물속에 몸을 담근 나의 마음만큼은 너무나도 조화롭고, 자유롭다.
그렇게 누워 하늘을 쳐다본적이 있는가..
너무나도 포근하고 자유로운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9.
저녁 식사를 하고, 서울행 마지막 고속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그랬다.
방학이 끝나갈때 학교갈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했고,
월요일이 되기 전에 일요일부터 월요일 걱정을 하느라 마음이 편치 못했고,
여행이 끝나기 전, 벌써부터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던 기억에 편치 못한다.
이러한 앞서감에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는건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일이란 말인가..
이제 4시간 후면 다시 서울에 있을것이다.
하지만..
떠날때 조급해하고 답답해 하던 내 자신으로부터의 구속을 어느정도 떨쳐버렸을지는.
결국 내 마음 가짐에 딸려있을테지..
내가 구속을 더 즐길것인지..
아님.. 조금의 노력으로 대세를 역전시킬 것인지..
결국 나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걸..
요즘은 자주 자우림 김윤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살아 있는 것인지. 살아 있는 꿈을 꾸는 것인지..'
난 살아있다.
근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함은 무엇일까..
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