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
'아뿔사...' 내 스스로를 너무나도 원망해야 했다. 내가 왜 맥북 옆에 물을 놔뒀을까.. 왜.. 왜... 하지만 일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났다. 앗! 하는 사이에 물통이 맥북으로 엎어지면서 물이 뿜어져 나왔고, 순식간에 물은 내가 사랑하는 맥북 틈새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정신이 아찔 하면서 무심코 켜져 있는 어플들을 종료하고 있었다.

'바보, 바로 파워를 끄고 밧데리를 뺐어야지!!'

하지만 이내 어플들이 동작을 멈추고 디스플레이에 병걸린 사람처럼 여러 색깔의 알 수 없는 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그때서야 강제종료를 생각해냈고, 파워버튼을 오래 누르고 강제 종료를 시켰다. 수요일 아침이었다.

맥북 프로의 존재
그 동안 어딜 가나 이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작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첫 만남 이후로, 여행 중에도, 잠깐 쉬는 중에도, 항상 잠을 자고 있다가 필요할때면 단 1,2초만에 벌떡 벌떡 깨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바로 시작하게 해주는 이 아이가 너무 좋았다. 난 너무나도 빠른 시간안에 이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 아이 역시 내가 좋아하는 만큼 언제나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그 만큼 이 아이는 그동안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편한 친구가 되어 주었고, 내 일상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를 살리기 위한 나의 노력들
네이버의 맥북을 쓰는 사람들KMUG에서 정보란 정보는 다 찾아 보았다. 이럴 경우에 다들 어떻게 했으며, 내가 다음 행동을 어떻게 취해야 맞는것인지. 이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렇게는 안돼!!!'

이런 저런 정보들을 다 검색해 본 결과, - 밧데리를 반드시 빼놓아라 - 드라이어로 말리지 말고 최대한 자연풍으로 말려라 - 말리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을 킬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바로 AS센터로 데려가라. 등등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막상 당하면 생각해내기 어려운 기본 항목들을 결론으로 얻게 되었고, 점심을 먹고 서비스 평가가 제일 좋았던 가산 디지털단지에 있는 KMUG로 초조한 마음을 안고 떠났다.

보이기 시작한 희망
KMUG 서비스 센터에서 입고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대기량이 많아서 1주일이 걸릴 수 있다는 답변을 듣고 착찹한 마음을 안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하루에도 함께 할 일이 엄청 많은데 1주일이라니.. 그리고 만약 문제가 있어서 수리에 들어가게 되면 적어도 2주 이상을 볼 수 없다는 얘기 아닌가.. 암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은 오래 지나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돌아온지 2시간정도 흘렀을 때 KMUG 엔지니어분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대략 뜯어 본 바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아!!! 정말!!! 진짜!! T^T"

종료 직전 증세를 조금 더 체크하고 정밀검사를 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얻고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1시간여가 지났을까, 아까 전화했던 KMUG의 엔지니어분께서 또 전화를 하셨다. "다 테스트 해봤는데요, 이상은 없구요, 안에 조금 있던 물은 다 제거했습니다. 찾으러 오셔도 되요"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던지... 아마도 꾸준히 덮어서 사용하고 있던 키스킨이 많은 역할을 해낸 것 같다.

기념 선물
목요일 아침 출근길에 가산 디지털단지에 있는 KMUG로 검사를 마치고 정상 판정을 받은 맥북 프로를 찾으러 갔다. 하루만이지만 어찌나 반갑던지.. 간 김에 언제 또 올까 싶어서 램을 4G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잘만(Zalman) 쿨러를 하나 주문했다. 앞으로는 물도 가까이 하지 않고 잘 지켜줄께.


el.

ps. 글 쓰고 나서 봤더니.. 나.. 애정결핍같아..


한국 들어간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평화로운 어느 봄날 오후에 본사에서 급한 호출이 들어왔다. "다음주에 바로 본사로 들어오세요" 라는 통화 한 통에 부랴부랴 짐을 싸고 어느새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와 있다. 다행히 일주동안 급한일을 모두 처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는걸로 '쇼부'를 쳤지만, 이젠 살기는 서울이 참 좋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여름엔 또 길게 나올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여어여 끝내고 빨리 들어가고픈 마음 가득..

el.

지난 주말 Allen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타이페이를 다녀왔다. 1년만에 찾은 타이페이는 통산 5번째 방문. 이제 타이페이는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나에겐 친숙한 도시가 되어버렸다. 갈 때 마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겨서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친구들이 많은 도시가 되어 있기도 했다. Allen군은 작년 하반기부터 일정 꼭 맞춰서 와야 한다며, 뭘 믿고 축가를 불러줘야 한다며 떼를 썼었다.

출장도 많았고,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도 외국 회사이다 보니 계속 왔다갔다 할 일도 많고, 개인적으로도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그 동안 비행기로 이동을 할 일이 많이 있었다. 그 와중에 딱 2번 비행기를 놓친적이 있었는데(버스도 아니고..), 그게 하필이면 둘 다 타이페이를 다녀올 때였다.

첫 번째는 2004년 여름, 2번째 대만 출장때였다. 택시타고 영수증 처리하면 될 것을 무슨 고집으로 버스를 타고 가겠다며 버스 정류장을 물어서 공항가는 버스를 탔는데, 확인 한다고 2번정도 물어보고 탔건만.. 그 버스는 국제 공항을 가는 버스가 아니었던 것.. 결국 옆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의 도움으로 간신히 타이페이 사무실로 돌아오긴 했지만 비행기는 이미 출발한 다음이었다. 타이페이 사무실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었다. 서울 간다고 공항으로 출발한 아이가 3시간여만에 사무실로 되돌아왔으니.. 난 넋살좋게 "나 다녀왔어~ 다시 만나서 반가워~"라며 인사를 했지만.. 무척 무안했던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지난주였다. 출근해서 일을 보다가 좀 일찍 나와서 인천 공항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는데, 메일 한 통 보내고 간다는것이 좀 늦어져서,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공항터미널에서 직행 버스를 탔을 땐 이미 출발 1시간 40분 전... 게다가 차도 막히고.. 결국 공항에 40여분 전에 도착해서 무작정 뛰어 갔지만, 타이 항공 직원이 "어떡하죠? 좀 전에 체크인 마감 됐는데...."... 아뿔사!.. "저기, 아직 시간 남았는데 후딱 들어가면 안될까요?", "죄송하지만 체크인이 마감되면 규정상 들어가실 수 없어요. 다른 항공편 알아보셔야 할꺼 같아요".. 아.. 이 무슨.. 고속버스 놓쳐서 다른 버스 기다리는 차원도 아니고.. 가장 싼 요금으로 예매해놓은건데.. ㅜㅠ 그래, 서두르지 못한 내 잘못이니 무엇을 탓하랴.. ㅜㅠ 결국 이렇게 해서 두 번째로 놓친 비행기 역시 타이페이와 엮이게 되었다. 그냥 놀러가는거라면 모르겠지만 토요일 낮 Allen의 결혼식에 반드시 참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다가 축가 순서까지 잡혀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곧 출발하는 다른 항공 비지니스석까지 알아봤으나 이미 만석이란다. 결국 토요일 아침에 제일 일찍 출발하는 대한항공편을 기존에 예약했던 타이항공보다 10만원이나 더 주고 예매하고 나름 긴박했던 상황을 종료하며 혼자 어이없어서 웃고 말았다.

토요일 아침 9시10분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타이페이는 서울보다 한시간 느려서 결국 바쁜 와중에 1시간 덕을 본 셈이다.) 수속하고 나온 시간이 대략 11시 30분, 버스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서 택시를 갈아탈까 하다가, 그냥 바로 택시를 타고 달려달라고 부탁. 결혼식장에 도착한 시간은 12시30분정도. 다행이 본 결혼식은 시작하기 전. Allen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1년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축가도 제시간에 부를 수 있었고..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너무 떨어서 삑사리를 좀 내서 미안했지만.. 어찌되었던 내가 제시간에 이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어찌나 감격스럽던지.ㅋ

축가 부르는 민우군

결혼식이 끝나고 남은 시간은 여유롭게 타이페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올 수 있었다. 비록 계획했던 장소는 못다녀왔지만 - 사실 이번엔 온에어 촬영 장소였던 지우펀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 다음을 기약하고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부턴 여유 부리지 말고 무조건 일찍 가는거다.... ㅜㅠ

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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